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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 꿈꾼 갭 투자 3040, 회생법원 줄 섰다

바이크제로 2025. 5. 19. 09:34

이자 돌려막다 파산... 대박 꿈꾼 갭 투자 3040, 회생법원 줄 섰다

 

서울회생법원 르포 부동산 침체에 高금리 직격탄
“이자 돌려막다 돈 다 까먹고… 파산 나락으로”

 

 

“여기저기 쏟아지는 폭탄을 돌려 막다가 ‘핵(核)폭탄’을 맞았습니다.”

지난달 25일 서울 서초동 서울회생법원 제9호 법정에서 나온 조모(47)씨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회생법원은 빚을 갚을 수 없게 된 이들이 ‘빚 탕감’을 호소하러 오는 곳이다. 4년 전 남편과 의논한 끝에 전 재산과 제2금융권 대출까지 끌어모아 인천의 한 모텔 건물(16억원)을 샀다. 부동산은 불패(不敗)라고 생각해 ‘올인’했다. 그런데 모텔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다급한 마음에 2년 전부터는 모텔에 싼값으로 장기 투숙할 전세 세입자들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엔 대출 금리가 급등하더니 두 배 넘게 뛰었다. 세입자들 전세 보증금까지 다 까먹었고, 결국 이날 파산 선고를 받았다. 그는 “노후 준비해 보겠다고 모든 걸 걸고 투자했는데, 나락으로 갈 줄 몰랐다”고 했다.

 

 

불황과 고(高)금리 장기화, 부동산 침체 등으로 회생·파산 절차를 밟게 된 임대인이 늘고 있다.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근로소득으로는 미래가 불투명하다”며 ‘갭 투자(전세 끼고 매수)’에 나섰던 30~40대 직장인·전문직·자영업자들이 경기 악화와 금리 인상 직격탄을 맞아 회생법원을 찾는 경우가 부쩍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파산 자영업자 찾던 회생법원, 실패한 영끌족들로 넘쳐

 

법원 청사엔 파산 절차를 밟으려는 중장년층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상당수가 빚을 내 아파트·건물을 샀다가 이자를 감당 못 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19년 차 파산관재인 홍현필 변호사는 “과거 실직 등 생계형 파산이나 코로나 이후 빚더미에 앉은 자영업자가 대부분이었다면 최근엔 갭 투자를 했다가 실패한 사람이 늘고 있다”고 했다.


문성조(45·서울 관악구)씨는 갭 투자를 하다가 파산한 4인 가족의 가장이다. 2019년 전국 부동산 가격이 치솟는 걸 보고 갭 투자를 결심했다. 4억원 상당의 부동산을 전세를 끼고 구입했고, 잔금·취득세는 대출로 메웠다. 3년 사이 서울·경기권에 아파트·원룸 6개를 추가로 매입했다. 그런데 이자가 급등해 300만원 정도였던 월 이자 값이 800만원까지 올랐다.

 

3금융권까지 손을 벌리다 빚이 7억원으로 불어났다. 작년부터 파산 절차를 밟고 있는 문씨는 “누굴 탓하겠느냐, 과도한 욕심을 부린 내 탓”이라고 했다. 법정에선 분을 못 이겨 고성을 지르는 채권자들과 울먹거리는 채무자의 “죄송합니다”란 말이 끊이지 않았다. “이놈아, 내 돈 10원이라도 내놔, 내놓으라고!” 지팡이를 짚은 한 70대 채권자가 소리를 지르자 고개를 푹 숙인 채무자가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했다.

 

본지가 만난 50여 명 중 대부분은 중장년층이었다. 그러나 영끌 투자를 했다가 파산 신청을 밟게 된 2030도 20%(9명) 가까이 됐다. 2023년 ‘빌라 전세 사기’ 사태로 임차인들이 보증금을 잇따라 빼려고 해 파산한 임대인들도 늘고 있다.

 

이모·박모(50·서울 동작구)씨 부부는 서울 사당동에 빌라 두 채를 짓고 세입자 80명을 들여 임대업을 해왔다. 그런데 전세 사기 파동 뒤 신규 세입자를 구하지 못해 기존 전세 보증금 반환이 막혔다. 채무액이 20억원이 넘어 형사 고발도 당했다. 남편 이씨는 택시 기사로 일하면서 빚을 갚아나가고 있다. 부부는 “세입자들에게 정말 미안하다”고 했다.

 

파산관재인 곽경태 변호사는 “최근 파산한 임대인 중 상당수는 투기꾼으로 보기 어렵다”며 “근로소득으로는 집을 살 수 없다는 불안감 때문에 위험을 감수하고 투자에 나섰지만, 경기가 이렇게 얼어붙을 줄은 몰랐던 것”이라고 했다.